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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 날리는 국도 우쓰미 류이치로

 이치노세키에서 살았던 소년시절에 나는 줄곧 히라이즈미를 찾아갔었다. 기차로 2번째 역에 내리면 되지만 나는 약 8km의 거리를 걸어서 왕복했다. 중학교 동급생들과 함께 흙먼지가 날리는 국도를 걸어서 갔던 것이다.
 지금과 같이 자동판매기가 있어 동전만 넣으면 시원한 캔주스가 나오는 시절이 아니였다. 한여름의 불볕 더위에 모자도 쓰지않고 걸어가다가 목이 말라서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되면 도로변에 있는 농가에 들려서 우물물을 얻어 마시는 것이 고작이었다.
 딱히 축제를 보러 가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갔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기분에 따라 주손지 절이나 모쓰지 절을 둘러보고 오는 것 뿐이었지만, 휴일이 되면 으레 친구들과 함께 그곳까지 갔던 것이다.
 당시의 히라이즈미에서는 관광객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어디나 모두 인기척없이 고요했다. 중학생이라면 주손지 절 주변의 모든 당이나 보물관을 무료로 배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자유롭게 들어가서 싫증도 내지않고 불상과 불구를 보았다. 지금은 비불(秘仏)로 되어있는 이치지 긴린불 좌상(사람피부의 다이니치 여래)도 보물관 구석에 안치되어 있어 손을 뻗으면 그 얼굴을 만져볼 수도 있었다. 후에 배관했을 때, 코 주변이 거무스름해져 있는 것을 보고, 우리들이 만진 흔적이 아닐까라고 찔끔했다.
 삼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한 후에 샛길를 골라 모쓰지 절로 향했다. 이곳도 무료로 자유롭게 출입할 수가 있었다. 우리들은 오이즈미가 이케 연못 주위를 뛰어다니거나 거대한 초석에서 상대방의 진지를 빼앗는 놀이를 하거나 풀밭에 드러눕거나 하며 놀았다. 우리들은 연못에는 들어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물론 물이 더러운 탓도 있었지만, 어린 마음에도 물놀이를 할 연못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오이즈미가 이케 연못에는 또다른 추억이 있다.
 초등학생 때, 맏누이와 함께 히라이즈미를 갔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아무래도 누나의 첫데이트에 감시역으로 따라갔던 것 같다. 아마 보수적인 어머니가 시켜서 갔겠지만, 그때는 전혀 그사실을 깨닫지 못했었다. 단지 본적도 없는 청년과 누나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대화도 그다지 나누지 않고 묵묵히 걸어다니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히라이즈미까지는 아마 기차나 버스로 갔던 것 같다. 흙먼지 날리는 국도가 첫데이트 장소라니….
 그때 일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마름 열매이다. 데이트 중인 두사람이 모쓰지 절을 둘러보고 오이즈미가 이케 연못가에서 한숨 돌리고 있을 때, 갑자기 청년이 수면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수초가 떠 있었고, 갈색의 별모양을 한 것이 어른거렸다. 청년이 그것을 건져올려 단단한 겉껍질을 벗기자 새하얀 열매가 보였다. 조심조심 먹어보았는데 의외로 맛있었다. 그다지 달지 않았고, 지금으로 말하면 캐슈넛츠를 부드럽게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라서 무엇보다 식량이 부족하던 때였다. 나에게 있어서는 감격할 만한 간식거리였다. 내가 조르자 청년은 몇번이나 마름 열매를 건져올려 주었다. 건져올릴 때마다 새로운 마름열매가 수면에 떠올라왔다. 어느새 우리들 주위는 마름 껍질로 가득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누나가 함께 마름열매를 먹었는지 어떤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첫데이트에서 마름열매를 실컷 먹었다라는 추억담을 들어본 적도 없고, 또 당시의 젊은 처녀가 마름열매를 마구 먹었다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
 상대 청년은 어디의 누구였을까? 그로써는 감시역으로 따라온 동생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한 것이겠지. 그러나 그것이 원인이 된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데이트는 그때 한번으로 끝난 것 같다.
 그후 누나 옆에 있는 그를 본 기억이 없다.
 모쓰지 절을 방문할 때마다 오이즈미가 이케 연못을 눈여겨 살펴보지만,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마름열매는 발견할 수 없다. 그당시 모쓰지 절에서는 겨울이 되면 냉장용 얼음으로 언 연못을 잘라서 썼다고 하니, 그때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이치노세키에서 히라이즈미까지의 긴거리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지금은 대부분의 집에 차가 있고, 노선버스도 자주 다니고 있기 때문에 아마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걸어서 거기까지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흙먼지 날리는 국도를 걸어갔을 때의 그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정토를 향하는 심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는 그런 생각도 든다.

히라이즈미 문화회의소 정보지 “동방에 있다” 창간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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