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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색당 환상 스기모토 소노코

 오슈 히라이즈미를 처음으로 방문했던 것은 16,7년 전의 일이다.
 학생 시절에 노(能)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모쓰지 절의 엔넨노마이 등에도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가기 전까지는 주손지 절보다 오히려 모쓰지 절을 보고싶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모쓰지 절에서 볼 수 있는 유구는 오이케 연못을 중심으로 한 정토정원뿐이다. 2대 후지와라노 모토히라가 재건하여 3대 히데히라가 당탑 40여채, 선방 500여채에 이르는 규모로 확장했다고 전해지는 고건축물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저쪽에서 엔넨노마이 춤이 연출됩니다’
라고 가르쳐준 건물을 오른쪽으로 하고 초여름의 오이케 연못을 바라보면서 잠시 멈추어 서있었는데 사람의 자취는 물론이거니와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연못에는 주위의 숲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흐린 날씨 탓인지 어두침침하고, 곳곳에 배치된 암석에도 작위의 흔적은 이미 없었다. 오랜 세월 풍설에 시달려 연못도 돌도 나무들도 본래의 자연에 환원해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정해진 정원조성의 규범에서 벗어나 쓸쓸하지만 한적한 나름대로 대범하고 느긋한 안정된 공간이 펼쳐지고, 무엇보다도 서로 겹쳐져있는 녹음이 불가사의하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물도 푸르고, 숲도 푸르고, 잔디밭도 푸르고……. 모든 것이 푸른 빛을 띠고 있지만 미묘하게 저마다 다르다. 꽃이 피는 계절은 아니었지만, 푸르름으로 물들어 있는 녹음 속에서 조금씩 다른 푸르름을 만끽하며 모쓰지 절에서 한때를 보냈다.
 주손지 절에 가자 곤지키도(金色堂)가 창건 당초의 모습 그대로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화려한 곤지키도(金色堂)를 보고 강한 감명을 받았다. 때마침 해체수리중으로, 사야도(수호당)를 떼어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야도의 사야는 콩깍지이고 칼집이기도 하다. 안에 있는 것을 보호하기 위한 수호당인 것이다.
 ‘오쿠조, 오쿠오 가사네루(지붕 위에 또하나의 지붕을 쌓아올리다)’
란 쓸데없는, 헛된 일을 경계하는 비유로 쓰이는 문구이다. 금박을 아낌없이 사용하여 그 자체가 황금제 보석상자로도 보였을 곤지키도(金色堂)를 비바람에 시달리게 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사람들이 결국 지붕 위에 또하나의 지붕을 쌓아올리게 된 것이다. 수호당을 만든 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것을 했던 것은 후지와라씨의 영화가 멀고 먼 과거의 꿈이야기가 되고나서이다. 황금꽃이 핀다고 할 정도로 금이 많았던 미치노쿠에서도 어느덧 금맥이 끊어져, 전승 속에서만 그때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래서 단 하나 예전의 증표로써 남아있는 곤지키도(金色堂)가 한층더 귀중한 것으로 사람들의 눈에 비쳤을 것임에 틀림없다.
 수백년만에 수호당에서 벗어나 본래의 모습으로 나타난 곤지키도(金色堂)……. 그것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나는 몹시 흥분했지만, 솔직히 그때 마음 한구석에서는
 ‘세월이란 비정하구나’
라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옷이 벗겨진 여인처럼 그대로 노출된 곤지키도(金色堂)는 조금 추운듯, 또한 수줍은듯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세월은 그녀의 젊음을 조금씩 빼앗아가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이미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늙은 여인의 나체였다. 보수공사를 맡은 건설회사의 비닐판 울타리가 그것을 가리고 있어 일반 관광객과 참배자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까지 생각되었다.
 절측이 베풀어준 후의로 안쪽까지 들어가 볼 수가 있었다. 아쉽게도 불상이나 불구류의 대부분이 다른 곳으로 운반되어 견학할 수 없었지만, 건물 자체의 모습을 상세한 부분까지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도움이 되었다.
 금, 나전, 옻 등 고가의 재료를 아낌없이 투입……. 호화로운 것이 황폐화되는 것은 초라한 그것보다도 더욱더 비참하게 느껴진다. 원형기둥의 손상된 부분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니 천과 옻이 몇겹이나 겹쳐져 있었다. 정말 사치스러울 정도로 재료를 써서 만들어진 것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손상된 부분은 살아있는 여성의 몸에 난 상처와 같아 측은하게까지 느껴졌다.
 곤지키도(金色堂)의 본존은 아미타여래이다. 그외에 양쪽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이천(二天), 여섯 지장 등이 안치되어 있다. 정식으로 말하면 아미타당이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것이 곤지키도(金色堂), 히카리도(光堂)라는 애칭으로 친숙해져 온 것은 금에 의해 장엄함을 느낄 수 있고, 작지만 찬란하고, 가련한 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중단(中壇) 밑에는 후지와라씨 1대 기요히라, 2대 모토히라, 3대 히데히라의 시체와 히데히라의 아들 야스히라의 머리가 모두 미이라화되어 잠들어 있으며, 머리 외에는 금관에 들어가 있다.
 말하자면 곤지키도(金色堂)는 아미타당이며 묘당(墓堂)이기도 한 것이다. 건립을 발원한 것은 기요히라의 모친이나 아내, 측실 등 그와 연관이 깊은 여성들이었다. 아마 이 여성들의 기원을 이어받아, 일족이 멸망하기 직전까지 당을 지킨 것도 2대째, 3대째와 인연이 있는 후지와라 가문의 여성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여인당으로써의 성격도 겸비하고 있던 당이 아니었을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냘프고, 섬세한 모습이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후지와라 왕국, 그 문화권 전체에 동원된 엄청난 양의 황금을 보면 곤지키도(金色堂)에 투입된 출자는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인재천재를 피해 천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연약하게 보이면서도 강인한 여인의 생명력과 어딘가 닮은 것 같다.
 게다가 복구됨에 따라 그녀의 노화는 말끔히 씻겨나가고, 윤기있고 싱싱한 창시의 젊음을 되찾게 되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주손지 절 전람회까지 열린다고 한다. 사람 피부 여래상의 이칭을 가진 이치지 긴린불상을 비롯해 절의 귀중한 보물도 많이 출품되어 진열된다고 한다. 그것들과의 재회가 몹시 기다려진다.

(“마이니치 신문” 1980년4월15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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